큐레이터 : 윤재갑
포스트-1989와 신자유주의의 등장
1989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대한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해입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구소련의 해체, 그리고 인터넷 혁명은 단순히 패러다임의 변화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세계사적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1989년을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에 버금가는 세계사의 분수령으로 꼽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팽창은 국경과 자본, 시장과 노동 모두에서 전면적 개방과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공항은 국제선 비행기로 붐볐고, 도시는 외국 관광객과 국경을 넘어온 물건들로 넘쳐났습니다. 민족국가에 기반한 국제주의(inter-nationalism)가 이때부터 지구(Globe) 전체를 하나의 기본 사유 단위로 삼는 글로벌리즘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국경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던 대중(大衆, mass)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국가와 민족,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다중(多衆, multitude)이 새로운 시대의 주체로 부상합니다. 다중은 자본을 견제하고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포스트-1989를 지탱하는 두 기둥은 ‘세계체제’로써의 글로벌리즘의 부상과, 이를 견제하고 비판할 ‘세계시민들의 연대’로써의 ‘다중’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지난 30년은 이러한 세계사적인 변화와 깊이 얽혀 있습니다. 전세계가 점점 신자유주의가 제공하는 달콤한 수액에 마취되어 갈 때, 이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세계시민들의 연대’도 그만큼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이 시기에 미술계에 200여 개가 넘는 국제비엔날레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이런 명분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차이나 아방가르드’와 글로벌 아트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이 말한 것처럼, 1989년 이후 탄생한 ‘전 지구적 도시’들은 들은 정치―경제―문화적 권력들의 집중이 가장 강력히 일치하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서양에서 동시에 진행된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확장을 통해 문화 권력이 재배치되었고, 이에 따라 중국 현대미술이 국제 미술계의 주류로 급부상했습니다. 이 시기에 차이나 아방가르드와 더불어 국제 미술계에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곳이 영국의 YBAs, 독일의 라이프치히 스쿨, 인도 현대미술, 그리고 차이나 아방가르드입니다. 그중에서도 차이나 아방가르드는 비서구 미술이 비엔날레와 미술시장 모두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 이 두 가지 경향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 차이나 아방가르드는 지난 세기동안 인류가 실험한 모든 이데올로기와 사회구성체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핵심입니다. 우웨민준을 비롯한 차이나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청춘의 가장 예민한 시기에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30 여년간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내용과 형식을 규정지어 왔습니다.
‘냉소적 사실주의(Cynical Realism)’에서 ‘환상적 사실주의(Magic Realism)’로
오늘날의 충격은 지구상의 모든 개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작가들은 자연계가 인간에게 전한 이 섬뜩한 경고에 진지하게 응답하고 있습니다. 우웨민준의 작품을 보면, 마치 꽃봉오리가 터지듯 입술을 맞대고 활짝 웃고 있습니다. 이는 냉소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내용과 형식들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그는 꽃, 죽음, 그리고 허공과 같은 주제에 집중해 왔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이미 그 스스로가 대표하고 있던 차이나 아방가르드라는 상징을 내려놓고 그것이 지시하고 제한하던 올가미를 모두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노장과 신유물론적 사유 속에서 식물과 동물, 삶과 죽음, 구름 속이나 물속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비판과 저항’에서 ‘공존과 공생’의 더 넓고 높은 차원으로 ‘포월(包越)’하며 옮아간 것입니다. 사실 포월은 모든 생명체의 근본적인 존재 양식입니다. 어머니 뱃속의 태아처럼, 조그만 씨앗 속에 큰 나무가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애벌레가 그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는 것처럼, 그는 냉소적 사실주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환상적 사실주의로 옮겨갔습니다. 비록 모든 아방가르드와 혁명이 진열장 속의 전시품으로 전락했을지언정, 포월을 통해 그는 작품 속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연계는 ‘공생의 유토피아’를 제안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만 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 태어남이 가능하고, 이 ‘당생(當生)의 윤회(輪廻)’야말로 수행의 궁극적 목표라는 불교의 가르침처럼, 이 세상에 ‘공생의 유토피아’가 가능함을 우웨민준은 작품을 통해 일깨웁니다. 이것이 결코 과학소설의 허구도 아니고, 미신도 아니고, 형이상학도 아닌, ‘현실 그 자체’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합니다. 20대에 만나 30년을 함께해 온 친구로서 저는 그의 새로운 여정을 축하하며 깊은 신뢰를 보냅니다. 전시장에 오신 여러분들도 그러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