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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mei Kaneyama: Future Days

에이메이 카네야마: Future Days

8월 18일 - 9월 23일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13길 12

무료

화-토 13:00 - 19:00

그림은 언제 멈출까?

— 에이메이 카네야마의 그림에 관한 비(非) 완성의 관찰


아사천(linen)의 펼친 면에는 이미 테두리가 있다. 그리는 자에게 스트레처(stretcher)는 실용을 위한 선택이지 그림을 위한 선택이 되기 어렵다. 테두리에 잘린 직물의 올이 선명한 천의 펼친 면은 은근한 확신에 차 그림의 시작을 재촉한다. 그림이 시작된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림을 본다는 뜻도 된다.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그려야 할지 알고 있다면 그림을 시작하기 어렵다. 그리는 자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그리는지 모르기 위해 그리기에 앞서 흘려보내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 유화 물감이 느리게 마르는 덕분에 그리는 자는 그림의 전개를 응시할 수 있다.


그리는 자에게는 그리고자 했던 것이 있다. 그러나 그리는 자가 그리려고 했던 것은 그가 그린 것과 같지 않다. 의도한 것과 의도하지 않은 것이 한데 뭉쳐진 형태가 이전의 형태를 덮는다. 중첩된 형태는 선형적인 시간을 따르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가 어느 것 하나를 가리지 않고 그저 나란하다는 점에서 가역적이다. 여럿의 형태가 서로 반응할 때 그리는 자는 때때로 만족한다. 그런 점에서 그리는 자는 필연적으로 우연에 기댄다. 형태가 서로 관계를 드러낼 때 그리는 자는 드러난 것을 부여잡지 않는다. 그 관계를 의도적으로 지속시키려는 욕망은 실패하는 욕망임을 안다.


만들어진 색은 자연의 색보다 협소하다. 자연이 누군가가 결정한 색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듯, 그림의 색은 그리는 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색채는 그리는 자를 자극하지 않는다. 그리는 자는 그저 주어진 색채를 받아들인다. 그리는 자는 색을 제한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는 자에게 가까워진 색은 있다. 그리는 자는 녹색을 잘 쓴다는 평을 듣곤 한다. 녹색과 노란색에는 상극에 가까운 거리감이 있다. 그 거리감이 녹색과 노란색의 관계를 정의한다. 그리는 자는 노란색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노란색에 책임감이 든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색에 따라붙는 상징과 해석을 벗어난다.


그림이 출발한 기억은 단일한 경험이 아니다. 경험은 과거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경험에 따라붙는 기분은 같은 기억을 배회하지 않는다. 시차를 구분 지을 수 없는 상태가 그저 실시간으로 변할 뿐이라는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는 자가 봤던 이미지는 그리는 자 안에서 녹는다. 그는 천에 녹은 이미지를 투사한다. 그리는 자가 봤던 형태는 그림 안에서 형체를 잃고 형식을 얻는다. 그는 그림과 대화하지 않는다. 천은 그리는 자의 귀일 뿐, 그리는 자에게 말을 거는 입이 아니다. 천에 드러난 표정에 관해 그리는 자는 침묵한다. 그림은 설명되지 않는다. 덜 그린 그림 역시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는 자는 덜 그린 그림을 표현할 수 없다. 그림의 덜함은 오직 그림만이 드러낼 수 있다. 그림 안의 여백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줄이지 않는다. 그림은 언제나 비슷한 종류의 느린 시간을 요청한다. 덜 그린 그림은 목표로 삼을 수 없다. 덜 그린 그림은 완성을 예비하는 단계가 아니다. 덜 그린 그림은 그 자체로 종료되었다. 끝나지 않은 것/완성도가 낮은 것이 끝난 것/완성도가 높은 것과 함께 그림 안에 보일 때, 그리는 자는 가능성으로 충만한 기쁨에 안도한다. 그리는 자에게 반성과 희망은 한 묶음이다.


그리는 자의 그림은 어디까지나 테두리 안에만 있다. 그림은 테두리 바깥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반면 그림의 공간은 테두리 안에 없다. 그림의 공간은 그림을 지켜본 자가 그림과 멀어질 때 가져가는 장소다. 보는 자가 가져간 공간은 그림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그림에 없다.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 가에 관한 고민은 그리기의 미래에 관한 고민이 될 수 있을까?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과 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서로에게 격렬하게 스며들 때, 비(非) 완성은 완성의 미래일 수 있을까?


글 박수지(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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