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를 초래한 인간은 멸종 위기의 야생생물 뿐만 아니라 사적 일상과 문화, 나아가 역사와 세계관을 담고 있는 소수언어의 멸종도 가속화시키고 있다. 글로벌화나 포스트 후기식민주의라는 거대담론을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는 멸종을 초래하고 있는 현 지구촌에 대한 불만과 좌절, 그리고 불안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김우진은 이번 전시《Voiceless Voice》를 통해 다양한 언어로 전 세계가 소통하고 이해를 넓혀 나가길 조심스럽게 촉구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언어의 사라짐에 관한 메모리즈 프로젝트(Memories Project)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챕터로 확장하는 단계적 의미를 가진다.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스스로도 이데올로기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의심하고 조심스럽게 바깥을 사유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의 노력은 이번 전시에서 마인드맵과 <무너지는 기호들 Collapsing Sign>을 통해 엿볼 수 있고, 아이디어의 관계망들과 함께 그동안 인터뷰 자료들을 아카이빙한 <완벽한 결말의 시작> 시리즈를 통해 드러난다. 또한 전시장을 커튼이 내려진 극장으로 전환하여, <한국어 받아쓰기 시험_다음을 듣고 따라 쓰시오(2채널 버전)>, <그리고 나는 짧은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_파트U>(이하 Part U), <유령과 바다, 그리고 뫼비우스> 이 세 작업을 순차로 스크리닝한다.
차와 다과상이 놓인 무대로 손님 역할의 배우들이 입장한다. 손님을 초대한 작가 김우진은 일본 오키나와 언어인 우치나구치의 사라짐을 추적하며 그동안 수집한 다양한 자료와 관련자 인터뷰 내용을 따라 문답 형식으로 쓰여진 시나리오를 배우들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촬영된 영상 속 손님들은 두상 아랫부분 몸의 행위만 보이는 낯선 프레임 안에서, 그 누구도 아닌, 또는 나를 포함한 누구도 될 수 있는 익명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반면 화자는 배우가 아닌, 우치나구치의 기억을 가진 실제 인터뷰 대상자의 음성으로 대체되어, 언어의 멸종 과정과 함께 당시 이데올로기의 횡포와 차별화에 대한 생생한 공동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영상은 인터뷰가 진행됨에 따라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아주 조금씩 흑백으로 전환되는데, 우치나구치 사멸을 묘사하는 부분부터는 완전히 흑백이 된다. 영상의 내러티브는 외형상 연극적인 형식을 차용하지만 인터뷰 내용과 발화자의 음성 및 언어가 실제 사건의 기억을 바탕으로한 만큼 직관적이고 사실적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손님들에게 “우치나구치로 당신의 오늘 하루를 얘기해주세요.”라고 요청한다. AI 번역기로 번역되지 못한 발화된 답변들은 그저 소리나는 음가로만 결과값을 보여주며 연극과 함께 신작 영상 <그리고 나는 짧은 연극을 만들기로 결심했다_Part U>(이하 Part U)는 마무리된다.
김우진 작가는 그동안 하나의 국가, 사회, 민족이 권력과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들로 개인의 사적이고 일상적인 영역, 특히 학교나 가정교육 속에서 언어를 강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메모리즈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는 아시아 지역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곳에서 발생되고 있는 유사한 사회현상과 함께 언어의 사라짐에 대해 다양한 관련자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지속해왔다. “아이누어와 우치나구치에 대해, 나아가 제주어를 비롯하여 아시아의 언어에 대해 조사하고 인터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 역사, 현재 상황을 과연 내가 진정 이해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극장 그리고 무대 위 연극 구조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더 큰 부분을 우리가 얼마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무지 혹은 무관심으로 인해 어떤 세계들은 사라지고 있다.” (작가 노트에서)